고령 주산-미숭산 산행
산높이 : 745
산행일 : 2002 09 20
기타 : 고령 주산-미숭산 능선
(먼저 미숭산 자락 북동쪽 아래 작은 마을 경북 고령군 고령읍 신리는 100여호가 옥담.낙골.음지마(음지마을)등 3개 마을이 한 동네를 이루고 있다. 이 작은 산골 마을 음지마에서 필자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미숭산 자락 뒷산에서 소를 먹이고 나무를 하며 꿈을 키워 왔고, 지금도 팔순을 앞둔 노부모님께서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임오년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찾아가는 r도중에 아직까지 때묻지 않는 대구 근교의 등산로를 전국의 동호인에게 알리고자 초소형 디지털카메라 하나 들고 단독으로 주산-미숭산 종주길을 나섰다.
지형지물. 관련 자료의 사진 주석. 설명은 필자의 기억과 주관적 지식으로 단편적일 수 있음을 밝혀 둔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대구에서 약 40여 분이면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에 도착한다. 고령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금산재를 넘어야 한다 이 길은 과거 비포장시절 낮은 고개이면서도 사고 많고 위험한 고갯길로 잘 알려 져 있다 고개길 정상 왼편에는 어느 작고한 전국회의원이 만든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고개를 살짝 넘으면 아담하고 조용한 고을 고령이 눈 아래로 보인다. 오른쪽 학교 옆 산 위에는 그 유명한 우륵선생이 만든 가야금을 형상화한 우륵기념비가 있고, 고을을 포근히 감싼 그리 높지도 않은 주산이 있고, 그 왼편에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대가야왕릉군이 주산 산허리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령읍 소재지 입구 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합천,거창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고령여자정보고등학교를 지나 오른쪽에 할아버지 묘같이 생긴 대형 흰 돔 하나가 보이는데 대가야왕릉 전시관이다. 대가야 왕릉고분군은 사적 제 7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중 제 44호분에서 발굴된 순장 형태와 각종 토기, 금귀걸이 청동그릇,야광조개국자 등 출토 유물은 꼭 한번은 들러 아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역사적인 사료이다(어른 입장료 700원)
가족을 먼저 고향집으로 보내고, 전시관에서 약 30여분을 소비한 후 음수대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식수를 보충한 후 전시관 좌측으로 난 길을 올라가며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40경이다.
30-40년생 소나무가 쭉쭉 뻗어 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다. 2분여를 오르니 고분 4기가 보이는데 33. 34. 35. 36호분이라고 되어 있다. 청춘 남녀 4-5명이 짝을 지어 사진 촬영을 하며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추억만들기에 여념없다. 계속 고분군이 열 지어 있는데 약 100메타 위 길의 남쪽에 따로 1기의 고분이 있는데 44호 고분이다. 지름 30여메타 정도 이고 아파트 2층 높이 정도의 아주 규모가 큰데 안내판을 보니 33기의 순장이 있고 출토물로 보아 왕릉이라는 것이다. 또한 출토물(야광조개)로 보아 당시 왜와 교류한 흔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조금 더 오르니 49호분 있는데 그 뒤 고분은 벌초를 하지 않고 잡초만 무성하고. 몇호분이라는 돌비석도 보이질 않는다. 조금 차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고분을 뒤로 돌아가자 주산정상 840메타란 이정표가 나온다 고분군을 따라 약 1길로메타를 오른 것이다. 등산로로 접어 들자 소나무향 그윽한 솔밭길이다. 이 솔향이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 산림욕인 것이다. 약 200메타를 오르자 작은 고개가 나오고 주산 산 허리를 타고 북쪽으로 돌아 조금 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주산 정상 250메타, 전망대 2,560메타"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주산 정상은 시간상 다음에 올라 가기로 하고 미숭산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주산 뒤ㅅ부분에는 참나무가 많았었는데 서쪽은 소나무가, 동쪽은 참나무. 오리목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얕으막한 산등을 오르자 오른쪽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공식명칭은 중화지. 60년대 순전히 장비없이 건설되었는데 그 당시 도내 4위 크기라 했다. 이곳 고령에서는 "낮질못"으로 불린다
아직 가을을 준비 못한 매미가 울고 있다. 뀌뚜라미도 매미 심정을 달래려고 같이 동조하는데 싸리꽃 향기가 은은히 산길에 퍼진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등산로와는 달리 이정표를 나무에 밧줄로 묶어 놓았는데 몇 년이 지나 그 밧줄이 나무를 조이고 나무가 신음을 하고 있다. 이정표 아랫부분에는 "자연을 사랑하자"는 글귀가 있다.
조금을 오르니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들려 빠르게 올라 가자 저 만치 두쌍의 30대 부부와 아이 둘 등 6인 가족 등반팀이 보인다. 조금 올라 가자 산허리를 넓게 닦은 주차장이 있고, 중화리, 지산리를 잇는 임도가 있다. 주차장 한켠에는 대가야 생수정이 있어 나그네의 목을 적시고 잠시 쉬어갈 자리가 있다. 젊은 가족팀이 카메라를 가져 오지 못해 사잔을 못찍는다는 것을 디지털로 한 컷하고 이메일 주소를 물어 기록해 놓았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출발한 지 약 1시간 만에 도착한 전망대(聽琴亭)는 정말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자리다. 전망대 오른쪽이 어릴쩍 유일하게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던 과수원이다. "뿔땅"이라 불리던 과수원에 칠월 칠석날 또는 백중날 전후해서 친구들과 보리쌀 한두 되 가지고 가면 복숭아 사과 배를 실컷 먹고 포대기에 반 정도는 담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식구들과 나누어 먹던 생각이 나지만 그 과수원은 흔적도 없어지고 잡목이 무성한 추억속의 과수원일 뿐이다.
전망대에서 미숭산쪽으로 바로 앞에 바라 보이는 봉우리가 "돈작골" 봉우리다. 소시적 소 먹이며 친구들과 거의 매일 올라 오던 곳인데.. 한쪽 날개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당시 내 키 정도의 독수리를 본 기억이 새롭다. 멀리 가야산이 히뿌옇게 보이고 뒤 돌아보니 지나온 주산이 보인다.
걸음을 재촉하여 반룡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 현재 시각 4시. 숲속에서 이정표가 없으면 길을 못 찾을 정도이고 숲속이 어두워 정상을 다녀올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정상가는 길을 포기하고 돌아 가려니 아득하다 이곳 오른쪽 골짜기 아래서 소시적 소먹일 때 꼬리가 긴 늑대를 본 기억이 새로와 빨리 벗어나고픈 심정이다. 반룡사 반대 방향이 고향마을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잡초 속에 길이 전혀 없다. 조금 더 올라 가보고 결정하리라 마음먹고 길을 서둘러 올라간다.
기우제를 지내던 "천제단-천지당으로 불렀음"터가 잡목만 무성하고 그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약10분을 오르니 "미숭산 810메타"란 이정표가 나온다. 정상을 올라 다녀올 시간이 빠듯하다. 인기척이 있어 큰기침으로 소리를 내자 저쪽에서도 헛기침을 한다 40대 초반 남자2명이 하산하다 말고 앉아 쉬고 있다. 같이 앉아 어디서 왔느냐니 고령읍에서 왔다고.. 학교 후배들이다. IMF때 귀향했다는 그 들은 고령 인구가 줄어 들고 학교가 폐교되는 숫자가 늘고.. 해지고 나면 출퇴근 공무원 빠져나가고 나면 거리가 조용하다며 농촌 고령의 위기감을 말한다. 정말 농촌의 현실이라고 동감했다. 약 10여분 이야기를 나누다 갈길이 멀어 먼저 일어서 미숭산을 향해 오르자 철쭉단지 팻말이 나오는데 과연 철쭉나무 키가 2메타 이상씩 크고 군락을 이루고 있고 철지난 철쭉꽃 한송이가 피어있고 그 옆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다 철쭉철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4시 20경 미숭산 정상부 입구인 석성터에 도착했다 이 미숭산은그 옛날 상원산이었으나 고려말 이미숭 장군이 반란군 이성계의 소환에 불복하고 끝까지 항전타 순절한 산이라 전하며 그 후로 미숭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어느 등산객이 소원을 빌고 등산 기념으로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저 돌탑에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석성을 따라 난 길로 서쪽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 작은 무덤이 있고 그 옆으로 밭 같은 공지가 나오는데 풀속에 하얀 시멘트 건조물이 있다 헬기장이다. 헬기장 끝 왼편으로 보이는 내려 가는 길을 따라 때죽 사잇길을 더 내려가면 복숭아, 돌배나무가 있고 그 사이에 샘이 있었는데 찾기가 어렵다. 억새풀만 무성하고 고냉지 채소를 가꾸던 흔적은 그 어딜 둘러 보아도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정상부에는 평지가 더 넓은 갈대밭을 형성하였는데 이제는 밀림이 되어 있다. 밀림속에는 크게 자란 고사리와 구절초도 끼어 있다. 봄이면 고사리를 꺾으려 대구에서도 미숭산을 많이 찾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 풀숲에서 까투리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 오른다. 놀란 가슴 쓸어 내리며 샘 찾기를 포기하고 정상으로 이동하였다. 미숭산에는 이제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에 괜시리 몸이 움추려 진다.
미숭산 정상에는 표석이 서 있다 "미숭산 733.5메타. 경남 합천군 야로면 하빈리 산 3번지"라고, 여태껏 이 산 아래 태어나고 자라고 수년 만에 와보는 미숭산 정상이 합천땅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정상부에 서있어야할 표석이 정상부에 있지 못하고 약 3메타 아래 내려와 있고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서쪽을 보니 매화산과 남산제일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가야산이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뒤 돌아 보니 지나온 주산과 멀리 비슬산도 시야에 있다. 남쪽으로 정상부에 하얀 바위 두개가 보이는데 "칠성단"이다 저곳에 그 옛날 고려말 반란군 이성계에 맞서 싸우던 이미숭 장군과 그 휘하의 장군들의 이름이 절벽에 새겨져 있었었다는 이야기를 어릴적 들은 적이 있다. 그 아래로 멀리 청소년 수련원이 자리잡고 있다.
정상바윗돌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목을 축일 겸 배를 하나를 깍아 먹고 문수봉(일명 공골산)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고 미숭산을 뒤로하고 내려 오기 15분여, 고령군 신리와 합천군 월광리를 있는 잘 닦여진 임도에 도착하고 약 30여분을 걸어 신리저수지에 도착하였다. 저수지 뒤 식당에 "산송이버섯 요리. 오리불고기"간판이 발길을 잡는다. 미숭산(반룡사 쪽)과 문수봉은 송이가 많이 나고 그 향이 전국 으뜸이다. 이 가을 송이가 많이 날 계절이다
하산길을 마중온 아내가 클락션을 빵빵거린다. 추석을 맞아 식구들이 다 모여 기다린다며.. (이때시간이 오후6시)
참고 1) 하산시 17:00 신리(옥담마을)에서 고령행 버스가 있음
2) 버스를 놓칠 경우 고령까지 택시비는 7천원 정도
2) 등산로 전 구간 거의가 휴대폰이 터짐
3) 식수는 임도 주차장에서 보충하면 되고 미숭산 정상에 샘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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