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살며 생각하며

山行 기쁨 (퍼온 글 :최 덕기)

가야산도사(倻山) 2003. 2. 22. 10:58

2003/02/22,12:42:13


아무리 여러 번 산에 간 사람일지라도 내일 산행이 있다면 마음 설레는 일은 처음과 같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거니와 그러한 속된 생각이 드는 사람에겐 산에 가는 여유조차 스며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산에 간다는 것은 적어도 일본식 고려장(葬)을 단장(斷腸)의 필치로 써내려 간 「나라야마 부시코」 같은 슬픈 산이 아니라면 우리의 허파와 심장을 걸러주는 가장 좋은 행위라고 감히 자부한다.

첫 번째 기쁨은 우선 산에 가기 전에 지도를 펼쳐보는 재미에 있다.
파란색, 붉은 색등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지도를 놓고 내가 갈 길은 이쯤이고, 건너야 할 강은 요기쯤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해 도리어 잠은 늦게만 온다.

두 번째 기쁨은 장 보러 가는 데 있다.
산에서도 어쩔 수 없이 먹는 일은 거를 수 없는 일이기에 대구포 서너조각, 사탕 몇 알을 사려고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느껴져서 좋거니와 어느 능선 어느 바윗자락에 앉아 다람쥐 처럼 밀감을 까먹을 내 모습이 절로 떠 오른다.

세 번째 기쁨은 "떠남" 자체에 있다. 모두들 잠들었을 이른 아침에 간 밤에 꾸려놓은 배낭을 살며시 집어들면 행여 아이가 보채지는 않을까, 마누라가 공연히 트집 잡지는 않을까. 그렇게 긴장된 가슴을 숨기고 살금살금 새벽을 움직이다 보면 내가 꼭 도둑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버리고 새벽 찬 기운속에 집을 빠져나올 때의 그 짜릿함이란.

네 번째 기쁨은 만남이다. 버스터미널에서, 기차역에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산에 가는 옷차림을 한 사람만 보면 왠지 기분이 좋다.
벽걸이 시계를 자꾸만 쳐다보고 내가 탈 차가 언제쯤 오는지 기다리다보면 옆 사람과 쉽사리 이야기가 오고가고 어느 산에 가느냐, 어느 코스로 가느냐 하는 것이 꼭 선문답(禪問答) 같다. 노란색 배낭을 메고 커피한잔을 뽑아든 저 아가씨는 아마도 아침세수를 안하고 나왔나보다. 얼굴이 부시시하여 자꾸만 내 시선을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그래도 나는 좋은데.

다섯째 기쁨. 내 몸과 마음이 낯선 곳으로 공간이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집과 직장의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그런 것과 상관없는 또 다른 세계로 나의 심신을 옮겨가는 일, 내가 모르고 지냈던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가슴두근거리는 설레임이 밀려온다.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일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는 표현도 여러 가지다.
가장 많이 쓰는 TRAVEL(트래블) 이란 말은 탈 것을 타고 특히 먼 곳 또는 외국으로 애써서 간다는 뜻이 있고, TOUR(투어) 란 단어는 여러 곳을 빙 둘러보는 순회관광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소풍이나 출장등 짧은 여행은 TRIP(트립)으로 표현한다. 또 하루의 일정으로 장거리 긴 여행을 할 때는 JOURNEY(져니), 배를 타고 여러 달이 걸려 오랫동안 여행할 때는 VOYAGE(보이지)라고 하며 집주변 가까운 곳을 가볍게 산책할 때는 RAMBLE(램블)로 쓴다. 탈선이나 가출등 좋지 않은 여행(?)은 EXCURSION
(익스컬션), 지루하고 고생스런 여행을 TRECKING(트래킹)이라 한다. 그리고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를 보고 BAGABOND(배거본드)라고.
어쨌거나 그러한 구분을 두고 내가 가는 산행은 어디에 포함되는지 따질 필요도 없지만 산에 갈 생각만 하면 한가지 생각은 꼭 떠 오른다.
나는 역마살이 끼었어 !.

여섯 번째 기쁨은 자연을 보는 기쁨이다. 자연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말함이 아닌가.
이름값 한답시고 아파트 베란다에 공주처럼 심겨져 있는 난화분이나 보물같이 유리상자 속에 갇혀있는 수석(壽石) 한 덩어리보다 산길에서 만나는 달맞이꽃 한 포기가 훨씬 예쁘고 아무렇게나 들쭉날쭉 박혀있는 바윗덩이가 훨씬 정감스럽다.
그렇게 산길을 걸으면서 내게 다가오는 흙냄새, 새소리를 만날 때마다 나는 늘 그것을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신선한 생명력과 느낌을 병원까지 가져갈 수야 없겠지만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의 이런 생각은 더욱 간절하다.

어느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두 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에, 또 한사람은 바깥을 볼 수 없는 병실 구석 쪽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창가에 앉은 사람은 늘 구석 쪽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자기가 본 바깥 풍경을 이야기 해 주곤 했다. 창밖엔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물오리 여섯 마리가 짝을 지어 한가로이 놀고 있으며 담장 울타리에는 빨간 장미꽃이 며칠만 있으면 꽃봉오리를 터뜨릴 것 같다는 얘기하며, 교회당 환풍기 밑에 둥지를 튼 비둘기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주다가 놓쳐 버렸다는 등 자기가 본 풍경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날마다 창가에 앉은 사람이 바깥세상을 본 풍경을 이야기해주자 구석 쪽의 환자는 바깥세상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밤 늘 바깥풍경을 이야기해주던 환자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병세가 악화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구석 쪽의 환자는 자신의 침대 머리맡에 달아놓은 비상벨을 눌러 간호사를 호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창가의 환자는 숨을 거두었고 시신은 밖으로 조용히 실려 나갔다. 며칠이 지난 후 구석 쪽의 환자는 간호사에게 자신을 창가에 있는 침대로 옮겨달라고 요청하였고 곧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구석 쪽에 있던 환자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창 밖의 풍경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팔을 괴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맞은 편 건물의 회색 담벽 뿐.

산에서 얻는 기쁨 일곱 번째. 땀을 흘리는 일이다.
바쁜 일상이 핑계가 되어 도무지 땀을 흘릴 일이 없다. 삼복 염천이 아니고서야 일부러 땀을 흘릴 일이 무어 있는가. 억지로 사우나를 가고 온천을 찾고 운동기구를 사다가 하릴없이 뛴다. 그것도 작심삼일이어서 한 해 두 해 가는 세월만큼 약국에서 찾는 약가지만 늘어난다.
그러나 산에 다니면 다르다. 몸과 마음의 모든 질병이 땀으로 다 빠져나간다. 더구나 땀이라는 것은 살을 빼고 육체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큰 위대한 작용을 한다. 그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알게 해주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고집과 독선의 불순물까지도 몸 밖으로 배출해내는 희안한 마력을 지닌 것이다.
그만큼 산에서 흘리는 땀은 별다르다. 배낭을 매고 산길을 걷는 것은 승부를 겨루는 경기가 아니어서 그냥 평온한 마음으로 걷기만 하여도 이마에, 겨드랑이에 땀줄기가 비오듯 쏟아지고 사람은 미이라처럼 자연에 동화된다.
그러나 다른데서 흘리는 땀은 사뭇 성격이 다르다. 승부를 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몇 대 몇으로 이기고 몇 대 몇으로 지는 일에 땀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이니 어디 산에서 나는 땀과 똑 같다 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산에서 되도록 많은 땀을 흘리려고 한다.

산에서 얻는 기쁨의 여덟 번째. 대자연의 「변화」를 보는 일이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산에서의 감격은 훨씬 커진다. 숲길에 들어서면 눈과 귀, 코와 살갗의 오관을 통해 대자연의 싱싱함이 한꺼번에 전해져 온다. 우거진 숲길에서의 진한 솔내음, 박쥐가 살고 있을 저 높은 절벽의 바위틈. 골바람이 한 번 휘몰아 오면 저 꼴짝에서 피어오르던 안개구름은 청솔나무 높은 가지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서산 낙조에 저 구름은 금새 붉은 빛깔로 채색되어 내려갈 시간 다 되었는데도 발길은 떨어지지 않는다. 똑또르 똑또르르... 건너편 용주사에 저녁 예불이 시작되었나보다. 나무석가모니불.

아홉번 째 기쁨은 먹는 일이다. 니꺼 내 좀 주고 이거 좀 먹어봐라.
풀밭에 둘러 앉아 가지고 온 음식을 펼쳐보면 선생은 어디서 왔소 묻지 않아도 담박 알수 있다. 김치에 젖갈 향이 좋으면 십중팔구는 여수 돌산이나, 목포부근의 남도사람이다. 고춧가루가 많고 맵다 싶으면 대구나 마산댁. 고춧가루가 희멀겋게 적게 붙어 있지만 백김치처럼 국물이 많고 시원한 맛을 주면 서울 경기지방이다.
그것보다 더 족집게처럼 알 수 있는 음식이 또 있다. 장롱에 숨겨놓은 보석함을 열 듯이 배낭 깊숙히 있는 물건이 저마다 얼굴을 내밀면 허허! 김 선생은 부산서 오셨구려. 어이구! 최 선생은 대구서 왔구먼요. 웜머이! 이 선생은 감자바우에서 왔구마이. 바로 소주다. 이름도, 향도 다르고 병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산에 취하고 구름에 젖은 일행은 어느 새 하나가 된다.

서산 일몰과 함께 이리저리 산행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저 아래 두고 온 일상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그 또한 산에서 얻는 기쁨이다.
땅 그림자가 밀려오는 하산길에 행여나 오솔길 옆 산죽(山竹) 더미에서 집을 찾는 산새소리라도 들을라치면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저편의 일상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것이다.

떠남은 언제나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걸까. 그 돌아옴을 부추기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집 앞 분식집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고추튀김 2천원 어치를 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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