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산행기

지리산(아들 동행,중도 포기한) 종주

가야산도사(倻山) 2005. 8. 5. 16:22

1.당초계획
  2일 01:00 대구 출발
      04:00 성삼재 도착
      15:00 벽소령 도착(1박)
  3일 05:00 벽소령 출발
      14:00 천왕봉 도착
      18:00 중산리 도착
      21:00 대구도착


2,시간대별 이동상황
  [2일]
  05:03 성삼재 도착
  05:15 성삼재 출발
  05:55 노고단대피소
  06:10 노고단고갯길
  07:17 노고단서 2.7km지점
  07:27 돼지평전
  07:30 피아골삼거리
  07:38 임걸령샘터
  09:17 반야봉삼거리
  09:45 삼도봉
  10:10 영섭이 무릅통증호소
  10:20 화개재
  11:44 토끼봉
  13:40 연하천. 점심
  15:10 연하천 출발
  15:30 음정갈림길
  13:44 연하천1.2km, 벽소령 2.4km지점
  18:10 벽소령
  [3일]
  08:15 벽소령출발
  08:56 무명폭포
  09:06 연하천갈림길
  10:30 음정마을 버스정류소


3. 산행기

02:00경 승용차로 88고속도로를 이용 고령을 지나면서부터 안개가 짙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서행으로 운행하면서 남원을 거쳐 정령치 고개를 지나 성삼재에 도착하니 05:00경이다.  오랫만에 전 가족이 승용차편을 이용해 여행하는 것도 무척 오랫만인듯하다. 당초 전 가족이 3박4일정도의 지리산 종주계획을 세웠으나 최근 아내의 건강이 좋질 않아 빠지고 기섭이도 산행을 거부해 결국 큰아들과 둘이 산행하기로 했다.

하산에 맞춰 중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구로 돌아가는 아내와 작은 아들이 탄 차가 안개 자욱한 뱀사골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불과 10여메타 앞을 분간 못할 정도로 짙은 안개속을 해드렘프를 켜고 10여분을 올라가자 빗방울이 떨어져 배낭덮게를 씌우고 나니 길이 어느 정도 훤히 보인다.

출발한 지 40여분만에 안개속의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산행준비를 하는 등산객들이 세수를하고 식사를 하는 등 분주하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노고단 고갯길. 벌써 발빠른 등산객들은 짙은 안개속에서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종주할 사람들은 부지런히 반야봉 방향의 출입문을 통해 속속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간간히 내리는 비와 안개 속을 약 1시간 가량 걸어가자 돼지평전과 피아골삼거리를 지나자 어느듯 산행객들이 수십명 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난다. 임걸령샘터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길을 가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샘터 옆에서 자리잡고 밥을 지어 아침을 해결하고 따끈한 커피도 한 잔 하니 몸에 기운이 솟는다. 바로 앞에서 먼저 아침을 먹고 출발하는 샌행객이 소주가 있느냐 물으며 생소주보다 먹기 좋다고 송엽주 원액을 한 잔 정도를 주면서 소주에 타먹으란다. 이래서 산 친구들이 좋다.

출발하려는데 샘터에 안경을 두고 간 것을 영섭이가 발견하고 천왕봉 방향으로 올라간 사람들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가져가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만나면 전하기로 했다.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을 보면 영섭이도 "미끄러우니 조심해 가세요"," 안녕하세요"를 연발한다. 벌써 산을 배운 듯하여 대견스럽다.
노루목삼거리 직전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가는데 지나가는 두 명을 보고 안경을 찾느냐고 확인하자 그들이 고맙다며 안경을 받아들고 천왕봉 쪽으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20대 젊음이 부러웠다.


반야봉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삼거리 직전에서부터 차츰 거리를 두고 따라 오는 영섭이가 힘겨워 보인다.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영섭이는 팔공산 동봉과 갓바위를 몇 번 다녀본 것이 모두인 산행 초보자, 1박3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계획한 자신의 무모함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산행 길가에는 잔대와 여뀌, 원추리 등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지난 반야봉 산행 때에는 지리터리와 비비추가 온산에 피어 있었다는 기억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데 어느듯 삼도봉에 도착했다.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난 바위 절벽에 걸터 앉아 짙은 안개구름을 보고 있자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싶다. 신선이 되어 복잡한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 같고 훌쩍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잠시 착각에 빠져 들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흰 구름이 밝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구름안개 저 너머에 햇살이 있어 오늘 내일 비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뇌리를 스친다.


화개재를 조금 앞둔 내리막 나무계단길. 올라오는 이들을 만나자 오르막이 얼마쯤되느냐는 물음에 눈에 보이는 저 많큼만 가면된다는 여유를 부려 본다. 내리막길에는 속도를 내던 영섭이가 영 엉거주춤 무릅통증이 심하단다. 드디어 화개재, 몇년 전 화개재의 황폐화를 막으려고 길을 돌려 내고 울타리를 쳐 출입을 통제한 덕분에 자연복원력이 생겨 거의가 풀로 덮혀 있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이지만 복원력이 엄청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몇장 찍고 돌아서는데 뱀사골 맞은편불무장등과 그 아래 계곡쪽이 훤히 밝아지면서 일순간 안개가 확 걷히자 화개재 쉼터에 있는 산행객들이 일제히 "와"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안개와 가는 빗줄기 속을 약 5시간동안 걸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지리산을 보는 순간이다. 사진 몇장 찍고 나니 또 한순간 안개속으로 묻혀버린다. 지리산의 습성인가보다.

산행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영섭이는 말이 없다. 몇년 전 첫 지리산종주를 시도하다가 일행이 탈진해 애를 먹던 코스, 토끼봉을 오르며 영섭이도 거의 그 수준이다. 그 때를 이야기 해 주며 속도를 더하려 해보지만 이미 한계점에 달한 듯 속도가 영 붙질 않는다.

마침내 토끼봉에 도착해 쉼터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으면서 원기를 돋구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팀원 5-6명이 식수가 없어 거의 탈진상태다. 첫종주 때의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갖고 있던 큰 페트병의 물을 그들에게 주자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한다. 휴식을 취하고 먼저 출발하는 그들에게 명선봉 직전 총각샘을 찾아 식수를 보충하라고 일러 주었다. 산행 중 식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휴식도 잠시 우두둑 소나기가 온다.
몸에 열이 많은 우리 부자는 가능하면 우의를 입지 않고 산행하기로 하고 길을 재촉해 보는데 5분여를 못 가서 빗물에 카바를 한 가방이 다 젖을 것 같아 우의(판쵸)를 입어 보지만 여름 소나기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다.
허리에 찼던 카메라를 지퍼백에 넣는데 벌써 카메라가 다 젖어 고장이 날 것 같아 비 오기 전에 미리 넣지 않은 걸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내 산행 지론은 "덥기 전에 옷을 벗고 춥기 전에 옷을 입는" 항상 미리 준비하는 것인데 날씨에 관한 한 미리 준비하지 못하니 한계인가 보다.정말 엄청난 비다.

총각샘을 전후한 길은 바위투성이 길. 엄청난 비와 그로 인한 반 탈진 상태의 영섭이는 속도가 거의 제로 상태다. 명선봉 쪽에서는 우루루꽝꽝 천둥 소리가 나고 어두워지면서 빗줄기는 대나무 숲과 같이 물기둥이 서는 듯 엄청나게 내린다. 오른쪽 계곡(의신이나 대성골인듯) 아래에서 홍수대피 사이렌인듯 소리가 가늘게 연속적으로 울린다. 계곡 피서나 산행 중인사람들을 피신시키는 모양이다. 우리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면 산행을 통제 받을 것 같다. 이 우중에 연하천 대피소에 갇히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해 본다

연하천 1.5킬로메타 이정표를 본 후 저 언덕먼 넘으면, 저 봉우리만 올라가면 한 게 몇번인데 연하천대피소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길은 시냇물이 되어 소리를 내고 흐르고 깊은 웅덩이가 되어 고여 있다. 드디어 내리막 나무계단. 몇년 전 이 길에서 발목을 삐어 종주를 포기했어야 했다며 몇번이고 미끄럼에 주의하라고 당부를 했다.

연하천대피소 아니 피난민 수용소다. 오른쪽 취사장엔 발 디딜 틈이 없고 출입구 좌우 처마 끝에는 비닐로 비를 막으며 점심을 준비하고, 식사중인 산행객들로 북쩍인다. 대피소를 한바퀴 돌며서 왼쪽 처마 밑 기름탱크 옆에 공간을 차지하고 라면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빗줄기가 가늘어 지는 걸 보고 출발하는 산행객이 늘어 난다. 비옷을 입지 않아도 될 많큼 빗줄기가 약해졌다. 영섭이도 점심을 많이 먹고 기운이 다시 살아난 듯하다. 출발 직후 땅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자 "예" 대답과 동시에 "어이쿠"하는 비명일 지르며 미끄러진다. 다행히 발목을 삐지는 않은 듯하다.

출발 5분여만에 빗줄기는 여름소나기보다 더 굵게 더 세차게 내린다. 삼각고지를 지나고 형제봉을 오를 때에는 길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폭포수와 같고 내리막길에는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는 듯 비와 물은 우리를 따라 다니는 듯하다. 소방 살수차가 물을 뿌리듯 아니 퍼붓는 듯하다 벌써 몇 시간인가. 정말 엄청난 비다. 원 없이 비를 맞아 보았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것 같다. 비만 오면 좋으련만 강풍이 불어 산모퉁이 돌아 서거나 고지 또는 노출된 언덕을 오를 때면 바로 걷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빗줄기가 빠르게 산을 넘고 안개가 산을 넘는다.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조난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다치면 걷지 못하고 걷지 못하면....조난, 저체온증.... 두려움이 밀려온다. 뒤따라 오는 아들은 내 생각을 읽는지 "아버지 미끄러우니 주의하세요"  몇 번이나 당부를 한다.

두시간이면 도착했을 벽소령대피소가 그리도 멀게 느껴졌다.
거의 탈진한 영섭이는 아직 멀었냐는데... 어느 정도 거리가 까지 가면 들리던 발전기 엔진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으니 아직 멀었나 보다.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지난해 11월경 한전 전기가 공급되었음)

산 모퉁이를 돌자 숲이 사라지고, 길 가엔 로프가 쳐져 있는 곳, "아 벽소령대피소"다. 비바람이 세게 불고 짙은 안개속이라 벽소령의 그 고운 자태를 몰 수 없고 빨간 우체통 또한 가까이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장이 아니고 대피소란 명칭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긴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그런 마음이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면 끝날 줄 알았던 산행. 하루 산행은 끝이 났으나 숙식이 문제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못하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고 출발 전 "대기자 5번째 7명째"를 확인하였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거나 취소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예약되고 자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대기자 명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식사를 하고 자리를 배정받아 북풍한설 찬바람 불듯 휘파람 소리나고 화장실을 가려면 날아갈 듯엄청나게 부는 바람 몰아치고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벽소령 대피소에서 그래도 편한 잠을 잤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을 준비해야할 사람들이 일어 나질 않는다. 어제 호우주의보가 해제 되지 않으면 대피소 밖을 나가지 못하게 통제한다는 안내방송이 있어서인지 모두들 꿈쩍도 않는다.

7시. 대피소에서 안내 방송 "호우주의보는 해제되었으나 전남북지방에 호우경보가 발령중이라 연하천대피소 방향은 통제되어 이동하지 못하고 천왕봉쪽 산행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에 대부분 모두들 음정방향으로 비상탈출 하기로결정하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느긋하게 식사 후 하산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