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단성면 단성ic에서 지리산 (중산리나 대원사 )방면으로 가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과속 카메라가 버티고 있고 이어 남사 네거리, 좌우로 고가와 정겨운 흙돌담마을이 나온다. 바로 이 마을이 남사예담마을이다.
청계를 가운데 두고 남사는 진주에, 상사는 단성에 속하였는데 그때 두 마을의 명칭이 같은 사월리였다.
1906년 진주의 사월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면서 남사도 단성군 사월면으로 산청에 속하게 되었다가 1914년에 단성군이 단성면으로 격하되어 산청군에 통합될 때 두 마을은 단성면에 속한 남사마을과 상사마을로 분리되었다.
남사마을에서는 수많은 선비들이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여 많은 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은 빛내던 학문의 고장으로, 공자가 탄생하였던 니구산과 사수를 이곳 지명에 비유할 만큼 예로부터 학문을 숭상하는 마을로 유명하다. 그 이름의 변용은 사양정사, 니사재, 이동서당 등의 서재 명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왕봉에서 일백여리를 흘러와서 우뚝 멈춘 수려한 봉우리가 니구산인데 그 모습이 아름답고 그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적 자연 승지다. 마을은 당산이 숫룡의 머리이고 니구산이 암룡의 머리가 되어 서로머리와 꼬리를 무는 형상인 쌍룡교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반달모양의 마을 터를 배 모양으로 생각하여 마을의 중심부에는 그 무엇도 채우지도 않고 우물도 파는 것도 금하여 왔다고 한다.
[자료 : 예담마을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예담마을 찾아가는 길 :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단성IC-지리산방향 20번국도-남사네거리서 50M
안내판에 충무공이 그려져 있어 놀랐는데...
마을 남쪽으로 당산이 있다
마을 앞 주차장에 서 있는 남사리 연혁비
입구에서부터 담장이 옛스런 흙돌담으로 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암수 은행 고목이 서 있다
여름이면 담쟁이가 흙돌담을 뒤덮어 더 멋스럽고 시원할 것 같다
최씨고가 가는 골목길. 대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구경치 못했는데 다른 집들도 대부분 대문이 걸려 있어 씁쓸했다
예담원- 아마 마을회관과 교육을 위한 공동 공간 역할을 하는 것 같은 건축물 같다
돌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녀, 같이 서라고 한컷 찍어주자 어색한 표정으로 "우린 남매사이로 내가 누나입니다"라 한다
곡선미가 아름다운 돌담도 있다
흙돌담 위에는 기와를 얹어 더 고풍스럽고 비바람에 잘 견디게 했다
골목길이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을 사람들의 성품이 배어있는 듯하다
사수 청계 냇가에 있는거북바위와 손바닥바위(?)
아이들 현장교육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사재 :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1597년 합천 율곡으로 가던 중 억수같은 비로 인해 하루 유숙했던 곳으로 호조판서,참판을 지낸 박효원의 재실이다
니사재 서쪽의 작은 연못
연못 옆에 서있는 백일홍나무
니사재의 옆 모습
니사재기
예담촌물레방앗간, 물레는 물레로만 돌고, 안을 들여다보니 전기 모터로 고추 빻는 기계등 방앗간 시설이 되어 있었다
예담촌식당
녹차가 들어간 녹차수제비, 기계로 만든 수제비를 칼로 쓴듯....산행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는 그 것이 문제가 될리 없었다
식당 주인이 신경을 많이 쓴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도로변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는 효자비각
어둠이 깔려오는 예담촌 마을담장 밖에서 산수유 꽃망울이 곧 터질듯하다
수령 300여년의 회화나무로 부부가 아래를 통과하면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시간에 쫒겨 다 둘러 보지 못했지만 너무 인위적인 맛이 많이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듯하였다
갈길이 먼 나그네는 어둠이 깔리면 서글퍼진다. 고로 서둘러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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