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살며 생각하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버스안에서-

가야산도사(倻山) 2004. 8. 23. 14:46

서류 가방을 오른쪽 어께에 매고 서둘러 시무실을 나섰다.
정문 앞에 나오자 신호대기 중인 306번 좌석버스가 보이지만 횡단 보도 신호등 파란불이 3개가 남아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동기인 J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다 신호가 바뀌자 부지런히 건너 방향이 달라 서로 갈라져 버스정류장에서 토큰을 사려 했는데 토큰판매소는 문이 닫혀 있다. 그 옆에서 좌석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서울서 내려온 아들이 성주친구  부친상에 다녀온다며 아내가 승용차를 가져가 졸지에 시내버스를 이용해 귀가해야 할 몸이 되었다. 잘 타보지 않던 시내버스, 입석버스는 송현동 살 때 몇 번인가  타 보았지만 동변동 이사 후 시내버스를 탈 기회가 거의 없어 요금이 얼마인지, 집으로 가는 차가 몇 번인지 코스는 어디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인터넷으로 겨우 동네로 가는 좌석버스 번호와 사무실 부근 정차지를 퇴근시간이 가까웠을 때 확인했다.



좌석버스에 올라 타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5,000원권 지폐를 기사분께 보이며 잔돈이 엊ㅅ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자자 인상이 영 좋질 않더니 자리에 가서 앉으란다. 미리 잔돈을 준비했어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으니 미안하기 그지 없고 온 버스안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 같아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힌다.  
잠시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앞자리와 건너편 창가에 앉은 40대 아주머니에게 혹시 잔돈 바꿀 수 있느냐며 5,000원권을 보이자 고개를 흔든다. 할 수 없이 버스가 잠시 정차하면 토큰 판매소에 뛰어 내려가 토큰을 사서 차비를 내기로 생각을 굳혔다. 버스 창문 위 쪽에  현금1,300원 승차권 1,200원이라 적혀 있는데 유난히 크게 보인다.

조금 후 건너편 창가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버스비 내려고 그러느냐고 묻더니 " 언제 만날지 몰라도 만나면 갚고 이 돈으로 차비를 내세요"하며 1,300원을 나에게 건넨다. "차가 조금 지체되는 곳에서 토큰을 사서 낼랍니다"하자  돈을 지갑에 넣는다. 버스는 서부정류장을 지나  두류공원 앞을 지나는데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보던 그 아주머니는 다시 돈을 내밀면서 "부담없이 이 돈으로 차비를 내고 그 차비를 다음에 다른사람에게 베푸세요"하신다. 그 말에 더 이상 사양은 못하고 돈을 받아 요금함에 넣고 자리로 돌아 오는데 또 다시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성당시장 앞을 지나고 대구대 부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토큰판매 박스가 보이고 앞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가 들어온다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내려가 토큰 두 개를 사고 잔 돈을 받아 버스에 다시 올라와 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며 1,300원을 돌려 주었다. 시내 중앙로에 들어서자  러시아워라 엄청나게 차가 밀리자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서행을 하고 있었다.



버스는 통일로를 벗어나 경대 북문을 지나 복현오거리를 통과하고 배자못 방향으로 접어 들자 그 아주머니는 내릴 준비를 하고 일어섰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하며 손을 내밀다가  말았다
건네 주려던 손에는 두 개의 토큰이 있었다."다른사람에게 베푸세요"라는 말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허희수  [2005/01/20]  ::
 아주 좋은 분을 만나셨네요. 외삼촌이 그분에게서 받은 고마움을 다른분들에게 전파해서 저에게도 오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