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으로 조선중기의 대표적 일반 가옥 형태인 ㄷ자형에 맞배지붕의 건물로 현재 종무소 겸 요사로 사용되며 조선시대 가옥 형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이였으나, 낡고 허물어져 지난 2002년도에 중수했다
묘각사의 경내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극락전(極樂殿)과 지장전(地藏殿), 그리고 산령각, 염화실이 있다.안쪽에서 본 설법전
묘각사는 해발 961.2m 기룡산(騎龍山) 정상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의상(義相, 625~702)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폐사되었다가 1760년(영조 36년) 삼성(三性) 스님이 중건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묘각사를 창건할 당시 산의 이름이 기룡산(騎龍山)이 된 것은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그 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 날아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나는 듯이 달려온 용왕은 대사에게 곧바로 설법을 청하였고 이에 대사가 법성게(法性偈) 일구를 설하자 홀연히 묘한 깨달음을 얻은 용왕(龍王)은 곧바로 승천하여 감로(甘露)의 비를 뿌렸는데 이는 당시 관내의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되었음은 물론 근과 가뭄으로 피폐한 민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대사께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사찰의 이름을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며 묘각사(妙覺寺)라 하였으며, 후대(後代)에 와서 이곳 묘각사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지장전]
[극락전]
단청공사가 한창이다
발걸음을 멈추게하는 앵두나무, 아내가 새큼한 앵두를 하나 다먹는데 지나시던 주지스님께서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자 바람났네~~" 노래하며 크게 웃으신다
산령각 올라가는 계단 옆의 동자상, 산령각 사진은 흔들려 올리지를 못한다
[요사채]
[경내 무료찻집]
산아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차방은 운치가 넘친다
정갈하게 정돈된 찻상
[돌담]
돌담의 일부가 된 맷돌, 암수가 분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어 묘한 기분이 든다
[등산안내도]
묘각사에서 산령각 쪽으로 900m(약1시간 소요)만 오르면 기룡산 정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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