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旅行

앙코르왓,하롱베이여행_11[킬링필드의 흔적_와트마이사원]

가야산도사(倻山) 2011. 10. 31. 18:17

와트마이( WAT THMEI) 사원

 

와트마이 사원은 크메르 루즈의 폭군 "폴포트"에 의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원으로

2차대전 후 크메르 루즈에 의한 내전이 발생하고 이념차이에 의해 당시 폴포트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캄보디아인의 1/3인 130만명 정도에 이른다

정문에 위령탑과 영혼을 달래기 위한 사찰이 있고 한쪽에는 당시 학살된 이의 유골을 전시해 놓고 있다

 

  

   

 

 

 

 

 

 

 

 

 가운데가 폴포트

 

 

 

 

 

  

 과거 학교였다는데 현재는 승려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원 입구의 추모탑들

 

 

 

 

길 건너편에 새로 건축한 사원 

 사원내부 불상

 

캄보디아 근현대사
①1954 독립
②시아눅국왕의 불교사회주의 국가 출범
③1970 시아눅 실각. 론놀장군 정권장악
④크메르루즈와 내전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군 '민주캄푸치아'라는 공산국가 수립
⑥1977 폴포트정권 베트남 침공
⑦베트남에게 점령당함
⑧1979베트남군은 프놈펜에 위성정권인 헹삼린정부 수립
⑨소련해체후 캄보디아에 평화를 주자는 국제사회의 분위기 조성
⑩1989베트남 철군
⑪1991 파리회의에서 캄보디아 4대군벌 무장해제, 총선거실시 결의.

본격적 비극은 ⑤번 시점에서 시작한다.
모택동주의자엿던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군이 1975년 프놈펜에 입성하여 '민주캄푸치아'수립한 다음에 지식인과 관료의 학살을 시작한다.
집안에 책이 많다고, 안경을 썼다고, 손이 곱다고 처형했다. 그 학살의 규모는 실로 대단했다

1979년 정권이 무너질때까지 170만명을 살해했다.캄보디아 인구 일곱명당 1명꼴이다.
이때 워낙 지식인의 씨를 말려놔서 후대에도 제대로된 교사,관료,기술자 하나 구하기 어려울 만큼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행삼린이 크메르루즈를 토벌하면서

50만명의 난민이 태국등 인접국으로 도피하는등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자료 http://php.chol.com에서 발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