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민속마을은?
성주 월항면 대산리 소재 한개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우리나라 6개민속마을(안동 하회,경주 양동,아산 외암, 고성 왕곡, 제주 성읍)의 하나로 2007.12.31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225호로 지정된 곳이다.
성산이씨(星山李氏)집성촌인 한개마을은 지금부터 500 여 년전 시조(始祖)로부터 15세손(世孫)이며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이우(李友)가 정착하여 터를 잡은 후 이어져 오고 있는 마을로 한개라는지명은 크다는 뜻의 한과 나루라는 의미의 개가 합쳐진 말로서 예전에 이 마을에 있었던 나루 이름이 한개나루였다는데서 유래하였다
한개마을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訓鍊院)주부 이석문이 터를 잡은 곳으로서, 사도세자 참사후(參死後), 영조50년(1774년) 세자를 사모(思募)하여 사립문을 북쪽으로 내고 평생을 은거한 충절(忠節)이 깃든 북비고택(北扉古宅)을 위시한 여러 채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자료출처: 성주군문화관광홈페이지]
한개마을 전경 [사진은 성주군홈페이지서 펌]
한개마을의 아름다운 담장
한개마을 담장은 석재와 흙으로 만든 조선중기때부터 만든 담장으로 그 길이가 3,300m로 2006년 6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61호로 지정되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는 성산이씨집성마을이다.
17세기 부터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등은 이 마을에서 배출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양반마을로서 600여 년의 명맥을 이어왔을 뿐만 아니라 전통가옥과 그 가옥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옛 모습을유지하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개마을의 옛 담장은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다. 외곽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체로 경사지에 위치한 관계로 산지에 접한 담과 주택동쪽의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되어 있다. 내곽담은 주거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 또는 연속시키는역할을 하고 있다.
한개마을 옛 담장은 장인이 아닌 마을 주민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 세대를 이어 만들어지고 또 덧붙여진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유산이하 랄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을 담당의 주류인 토석담은 전통한옥들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마을속에 잘 동화되어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글: 성주군문화관광홈페이지서 펌]
교리댁
조선 영조36 (1760)년에 사간원 사간,사헌부 집의등을 역임한 이석구(이석구)가 건립한 가옥이다.
집이름은 이석구의 현손 이귀상이 홍문관 교리를 역임한데서 비롯된다
돈재이공(이석문) 신도비
북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4호)
이 건물은 조선 영조50 (1774)년에 사도세자 호위무관이었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이 터를 잡은 가옥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참혹하게 죽은 후 그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해 사립문(북비)을 내고 평생을 은거한 곳으로 충절과 문한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월곡댁(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6호)
이 건물은 1911년에 이전희가 처음 건립하였으며 1930년에 사당을,1940년경에 별당채를 추가 증축하였다.
출입문이 잠겨 있어 담 너머로 몇장 찍었다
하회댁(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26호)
이 건물은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터를 잡은 한 개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조선후기 양반 주택이다 현 거주자의 조부가 구입해 그 자손이 살고 있는 관계로 그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630년대 건물로 추정된다 택호는 소유자의 부인이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온 데서 연유한다. 마을에서 제일 깨끗하게 관리 유지되고 있어 한층 호감이 가는 집이다.
한주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5호)
이 건물은 조선 영조 43(1767)년 이민섬이 건립하였다. 그 후 고종3 (1866)년 성리학자인 한주 이진상이 새로 개축해 현존하고 있다. 한주정사라는 정자가 있는 구역과 안채 사랑채가 있는 구역으로 나뉜다.
한주정사로 들어가는 대문은 남향,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동향이며, 정자와 안채를 사잇담을 두고 협문과 일각문으로 출입한다.
20여년 전 방문시 한여름임에도 유과등 한과를 대접 받고 속으로 놀란 적이 있다.
극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54호)
이 건물은 조선 철종3년(1852)에 이주희가 지은 집으로 한 개마을 안길 끝부분 우측에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주희는 문충공 송병선에게 학문을 전수받았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소를 지킨 효자이다. 한일합방 소식을 전해듣고
흰옷과 흰종이갓을 쓰고 거실의 장판을 걷어내고 거적을 깔고 살면서 집 밖 외출도 않으며 항거한 애국지사로 이름 높다.
성주 월항 한개민속마을을 둘러보고...
20여년 전 방문 때와는 달리 한 두 집을 빼고 마을 전체가 방치되고 무관심 속에서 허물어져 폐허화 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중요한 민속 자료가 허물어져 사라지고 없어지기 전에 정부와 국민적인 관심으로 보존 관리되어야 하겠다는 씁쓸함을 마음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 > 경상권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1박2일 (0) | 2008.11.29 |
---|---|
[동영상]입으로 목탁 치는 우보살(소) (0) | 2008.11.27 |
겨울 초입에 다녀 온 성주 성밖숲 (0) | 2008.11.24 |
성주 선석사와 세종대왕자태실 (0) | 2008.11.23 |
군위 아미산의 가을 (0) | 2008.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