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탐방/성주의 문화유산

사창서당

가야산도사(倻山) 2026. 5. 31. 08:03

사창서당
(社倉書堂, 경북문화재자료 제200호)
한강 정구(1543~1620)선생이
41세(1583, 선조16년)회연초당을,
49세(1591, 선조24년)-사창서당 글방(서숙書塾)을 지어 제자를 가르친 곳.

1796년(정조20년)제자 후손들이  다시 건립, 1797년(정조21년) 유허비를 세움

정면5칸 측면2칸 규모. 앞면 3칸의 대청마루와 양쪽 온돌방으로 구성된 조선 후기 서당 건축물. 낙영재(樂英齋) 경산헌(景山軒)이라 편액되어 있음

사창(社倉)은
흉년에 대비해 곡식을 모아두던 창고가 있던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

사창서당 전경

한강정구선생유허비

사창서당

문화유산안내판

묵헌 이만운의 사창서당기

題社倉新構(제사창신구)-말미 해설첨부

낙영재

경산헌

題社倉新構
小小生涯小小家。(소소생애소소가)
志存容膝更無加。(지존용설갱무가)
半生已熟茅茨下。(반생이숙모자하)
瓦覆新居便覺奢。(와복신거편각사)

사창(서당)을 새로이 짓고 (詩를) 쓰다.
소소한 삶에 소소한 집이라, 무릎으로 기어들어갈 공간에 뜻을 두니 더 바랄 게 없네! 반평생을 초가 아래서 익숙하게 살아왔는데, 기와 덮인 새 집이 오히려 사치스럽네!

昔在萬暦辛卯寒岡老先生移卜于斯作此詩。
粤三周之丙辰一鄕士林建書塾於遺墟。因刻是詩懸于楣間
지난 만력 신묘년(1591년)에 한강(寒岡)께서 이곳으로 (거처를) 정[卜]하고 이사하여 이 시를 지으셨다.
그로부터 3주기(三周)가 지난
병진년(丙辰年, 1796)에 (한) 고을의 사림이 (선생의) 유허지에 서숙(書塾)을 세우고, 이 시를 새겨 문미(門眉) 사이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