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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경사(哀 慶事)와 부조금(扶助金) [펌]

가야산도사(倻山) 2004. 4. 17. 14:30

  2002년도 9월경에 한국야쿠르트에서 본격적인 결혼 시즌을 앞두고 직원 261명을 대상으로 축의금 문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0.6%가 「존속은 하되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 답하고 또 「전통의 일종이다」가 33.7%, 「사회 통념상 어쩔 수 없다」가 19.9%인 반면 「잘못된 관행이므로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은 5.8%에 불과했다.

  축의금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축의금 그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50.2%), 「부담되지 않는 선물」(39.8%), 「각종 상품권」(7.3%), 「마음으로 표현 한다」(2.7%)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축의금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당사자와의 친밀도 및 관계」(57.5%)가 「소신껏 정성을 표시 한다」(22.2%)는 의견보다 많았으며, 「자신이 받은 액수에 따라」가 11.1%, 「그 때의 재정 상태에 따라」가 9.2%등이었다.

  10년 전인가 이규태 선생의 「애 경사(哀 慶事)와 부조금(扶助金)」에 보면 “그토록 가난했던 우리 조상들이 조금도 각박하지 않고 유쾌하게 살아낼 수 있었던 비밀은 촌락단위로 관습화되어 내린 환난상휼(患難相恤)-곧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 공생공존(共生共存)의 전통 때문이었다. 그 부조금의 액수는 촌락에 따라 다르고 빈부에 따라 다르나 많은 향약(鄕約)을 평균해보면 상사(喪事)의 경우 마을의 공동금고에서 쌀 열 말 보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개별 부조금은 생활정도가 상(上)일 경우 공동부조금의 1할인 쌀 한말이고, 중(中)일 경우 쌀 닷 되, 하(下)일 경우 쌀 서 되가 상식이었다. 「뒤란 덤」이라 하여 친분이 각별한 사람은 남모르게 뒤란으로 더 내는 관습도 없지 않았으나 부조금의 생활부담은 그다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조는 애사(哀事)에 하는 것이 원칙이요, 과거에 급재했다거나 회갑이나 고희 연(古稀 宴)을 베푼 다거나 혼례나 회혼(回婚)을 당하거나 하는 경사(慶事)에는 그 집이 워낙 가난하지 않고는 애사부조(哀事扶助)의 반액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다. 따라서 경사에는 웬만큼 사는 사람일지라도 쌀 닷 되가 넘는다는 法은 없었다.

  본(本)이 이동민족(移動民族)이라, 한 군데 눌러 살지 못하고 뜨내기로 살아온 유럽이나 중동사람들은 서로간의 친화력이 약하고 또 굳이 친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에 애 경사에 간단한 선물이나 꽃으로 대신할 뿐 부조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부조 문화권에 속하여 가족의 애 경사에는 부조금액이 한국보다 많지만 회사 동료 간의 애 경사에는 우리보다 적은 편이다“ 이하 략(以下 略)

  본인은 애 경사(哀 慶事)의 부조(扶助)를 조상전래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고 향약(鄕約)이며 상부상조(相扶相助)와 품앗이(exchange of work)라고 생각하며 애 경사에 부조금을 받고 자기 대(自己 代)에 못 갚으면 자식 대(子息 代)에, 자식 대(子息 代)에 못 갚으면 손자 대(孫子 代)까지 갚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결혼 청첩장이든 부고(訃告)장을 보내는 사람은 상대방의 청첩장이나 부고 장(訃告 狀)을 받았을 때 품을 갚을 것을 전제(前提)로 해야 함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받은 후에는 관심이 없다.
  부조액수도 주는 사람은 자기형편(形便)에 따라 주고, 받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액수로 갚으면 됨에도 우리 사회에는 부하는 상사에게 많이 해야되고 상사는 적게 해도 되는 관행(慣行)이 있었는데 친 불친(親 不親)·호 불호(好 不好)에 관계없이 애 경사(哀 慶事)의 부조금(扶助金)은 상대로부터 받은 액수와 자신의 형편(形便)에 따라 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아야 정상사회(正常社會)라고 생각된다.

                    대구수성경찰서장   총경 이 정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