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살며 생각하며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서문
가야산도사(倻山)
2003. 5. 23. 11:36
많이 아팠다.
길을 더럽히는 족속들은,
길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종적이 묘연하다느니,
자취가 없다느니,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느니 하면서 길을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길처럼 뚜렸한 흔적은 이 세상에 없다.
사진 판독기보다 더 극사실로 길은 지나간 사람들의 자취를 기억한다.
길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발자국 정도는 우습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
들이쉬고 내 뱉는 숨소리에서 몸 냄새까지 오래도록 저장하고 있다.
길을 함부로 대하면 다시는 그 길을 갈 수 없다.
길 가에는 아무렇지 않게 있다가 결정적일 때 증언하는 나무와 풀이 무수하게 살아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함부로 내디뎌 신발밑에 깔려 죽은 뭇 생명들의 원혼이 수천 년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늘 걸어도 두렵고 떨리는 삶이란는 고행앞에 다시 추운 겨울이 서 있다.
이 정도 아픔은 견뎌야지.
아픔이 없으면 견디는 힘도 사라진다.
-2002년 가을 초입 서산에서-
작가 [유 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