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산행기

기쁨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월악산 산행후기

가야산도사(倻山) 2006. 11. 28. 17:12

글쓴이 : 마린
날짜 : 2006.11.28 20:14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월악”의 꼬임에 빠져 집을 나선다.
5대 악산 중에 하나인 월악산 산행이 우천으로 인해 더욱 힘들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바래 본다,
산행이 끝날 때 까지 우의나 아이젠을 쓸 일이 없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운이 좋아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인 덕주공주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즐거운 산행이 있을까 싶어 기대감으로 월악산으로 향하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는 벌써 월악산 국립공원지역을 통과해 산행지에 다다른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산행을 시작하면서 월악산과의 만남은 조심스럽게 이어만 간다.
늦은 가을날의 풍경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가파른 등산로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의 만남은 시간이 지나면서 양파의 껍질을 벗기 듯
두꺼운 외투를 하나둘씩 벗어 던지게 하더니 마침내 모두에게 힘든 산행을 강요하고 만다.

송계삼거리에 이르러 바라다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바위산 “영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케 하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를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한다.

가까워질수록 보이지 않던 등산로가 스크루처럼 바위산 저부의 우측을 돌아 배면을
회전하더니 직벽에 가까운 천국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마지막 남은 기력마저
소진케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미니 땅 끝 허공이란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지루한
계단과의 만남에서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이 곳이 정녕 월악의 끝자락과 하늘 끝이 만나는 “영봉”이란 말인가 ?
좀 전까지 해도 세찬 바람을 동반하고 속세 인간의 접근을 막으려 애쓰던 모습은 어딜 가고
우리네 힘든 산행을 알았는지 넓은 가슴으로 포옹한다.

오랜 세월 월악산을 지켜 온 표석 앞에선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몇 컷을 담을 수 있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충주호와 월악의 정경이 운무에 휩싸여 파노라마처럼 다가오지만 짧은
가시거리 때문에 월악산 본연의 아름다음을 만끽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훗날 다시 오리라는 얘길 전하면서 서둘러 정상을 떠난다.
산행이 힘들어도 주위경관이 아름다우면 피로가 덜하다는데 덕주사로 향하는 하산 길은 정상을
향하던 때와 같이 지루한 계단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나 본 듯한 마애불에 이르러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게 해주길 합장해 본다.
손짓하는 마애불을 뒤로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덕주공주가 부왕인 경순왕을 그리며 쌓았다는
덕주산성과 누각이 세월의 흐름도 잊은 체 묵묵히 바라본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얘기처럼 서둘러 하산 한 탓에 덕주사를 지나
덕주골과 주차장에 이른다.
너무 빨리 하산한 탓일까 후미가 합류하길 기다리며 월악산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
* 덕주사에 들러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의 영혼을 달래는 향이라도 피우고 하산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