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산행기

지리산(천왕봉 일출산행)

가야산도사(倻山) 2006. 8. 11. 17:07

팔공님의 전화 한 통, 지리산 무박종주 가시렵니까?
난 손을 절래절래 내 둘렀다. 지난 2월 겨울 1박 종주 때 힘에 부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공님의 그 한마디가 지리산을 가고픈 내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말복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10일 아침

이것 저것 대충 챙긴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섯다

초복 중복 때도 찾아 뵙지 못한 고향 부모님께 시원한 수박과 복달임 음식을 준비해 찾아 뵙고 점심먹고 가라시는 말씀을 뒤로한 채 지리산으로 향했다.



14:30경 중산리 도착.

매표소에서 법계사 다녀올 시간이 되겠다는 확인을 하고 출발했다.

대형등산안내간판 앞에서 중년의 남녀 10여명에게 산행 코스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 보여 등너머로 들어보니 서울서 온 산악회원인데

법계사서 1박하고 천왕봉 일출 본 후 대원사로 하산할 계획이란다.

아직 대원사 코스를 못한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일. 졸지에 산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그러마 승락을 하니 스트레칭부터 한다. 좋은 산악회다 싶은데 자기 소개를 한다. 끝으로 "전 게스트로 대구에서 온 정순오입니다" 소개를 하자  고향사람이라며 더욱 반긴다.

일행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30분쯤 올라가니 칼바위 못가서 냇물이 있는 계곡으로 길을 벗어난다.

순식간에 배낭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여성회원들도 옷을 갈아입고 같이 들어 가는데...이들은 목욕하고 저녁해 먹고 늦게 법계사 도착하면 된다며 느긎하다.

1박할 준비도 안된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들과 인사를 하고 혼자 길을 재촉했다. 칼바위를 지나 장터목대피소 방향으로 길을 잡고 열심히 올라간다. 깊은 물이 푸른색을 띄고 있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맑고 시원해 보인다. 풍덩 뛰어들고픈 생각이 간절하나 장터목까지는 아직 멀었다.

홈바위를 지나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경사가 가빠진다. 등에는 물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되고 이정표는 차츰 장터목 대피소가 가까워 짐을 가르킨다.

장터목대피소 0.6킬로메타 지점 이정표를 지나며 다리에 힘이 빠진다. 점점 경사는 급경사로 변하고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린다. 하산하는 사람도 간간히 보이는데 그 중 초등학생을 데리고 하산하는 이도 있는데 렌턴이 없단다. 걱정이 되어 어둡기 전에 하산을 서둘러라고 충고를 해 보지만 정말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 내 입장을 생각해 본다 비박할 준비도 없고 갈아 입을 옷도 없으면서 자꾸 올라만 가고 있으니 내심 걱정이다.

40대로 보이는 또다른 하산객 그는 장터목대피소에서 물이 많이 부족하니 이쯤에서 싹씻고 땀 안흘리도록 살살 올라가라는 충고다. 기운도 빠지고 땀도 많이 흘려서 냇물에  티셔츠를 빨고 머리도 감고나니 기운이 되살아 난다. 식수용과 저녁식사용 물을 물통마다 가득 채우고 출발을 하는데 결국 100메타도 못가 땀이 물흐릇 다시 흘러내린다.

저만치  발전기 소리가 들린 지 이미 오래인데 아직 시야엔 보이지 않는다. 식수 보충하는 간이 수돗가엔 이미 5~6명이 줄 서 있다.

16:30 경  중산리를 출발한 지 4시간여 만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운는 게 급선무. 비박할 사람들 옆에 자리를 깔고 라면을 삶았다.  그리고 참치를 넣어서 끓이니 맛있는 저녁이 되었다.  커피도 한잔 끓여 먹으니 신선 노름이다. 울산 현대미포조선소 사원들이라며 국기와 사기를 앞세우고 40-50명이 극기훈련을 한다며 늦게 도착하니 온통 시끌벅적 한다.

온몸을 휘감았던 땀이 식으면서 추워진다. 젖은 옷은 마르지 않고 칙칙하다. 처음엔 대피소 처마 밑에라도 자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자꾸 추워진다. 화장실 입구라도 바람 없는 곳을 찾아야겠다며 짐을 챙겨서 화장실 입구복도로 가 보니 여기는 안되겠다 싶다. 무조건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니 대피소 직원이 들어오면 어떻하느냐며 나무란다. 예약을 못하고 왔는데 비박 준비가 전혀 안되 할 수없이  들어왔다고 하니 나이가 몇이냐 묻는다.  

120명 예약자 중 2/3가량이 도착하지 아니한 상황이라 자리는 넉넉할 것 같다. 하지만 60대, 초등학생동반자, 중학생, 여성 순서로 미예약자를 불러 들인다. 다음 50대를 불러 주민등록증을 확인 후 자리를 하나 내준다. 숙박료 7,000원. 모포 3매 3,000원 그래도 감지덕지다.



9시 소등하기 전 벌써 코고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다들 피곤했던 모양이다. 옆자리에 형제는 아닌 듯한 어린학생 둘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그들은 부산에서 온 아이들로 초6,중1년 학생들로 아주 예의 바른 아이들이었다. 9시에 불을 끄고 나니 코고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겨우 한 숨을 자고 일어나니 12시경. 잠이 오질 않는다. 누워서 뒤척이다 앉아 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고 온몸이 쑤신다.



새벽 3시, 알람을 맞춰 놓은 휴대폰이 여기저기서 요란스레 울린다. 모두 일어나 짐을 챙긴다. 비닐봉지 바스락거림이 귀에 거슬린다. 밤새 옷을 말려 뽀송뽀송한 옷을 입으니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모포를 반납하고 대피소 밖으로 나가니 전부 일어나 부산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일어나 인원점검을 하던 현대미포조선소 극기훈련팀원들이 먼저 출발하는 것을 보면서  버너에 불을 피우고 비상식으로 가져온 쇠고기 죽을 끓여 먹고나니 03:40경이다. 기온이 섭씨16도. 잔바람이 있으니 쌀쌀하다. 모두 헤드렌턴을 켜고 출발한다. 이 시간 세석대피소 방향에서 밤을 새며 오는 이들도 보인다.



제법 쌀랑한 날씨지만 제석봉 급경사길을 오르니 몸에서 열이 나면서 콧등에 땀까지 맺힌다. 아직 서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보름달이 훤히 앞길을 밝혀준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엔 헤드렘프가 줄이어 개미 이사하듯 움직인다. 통천문 을 통과할 때는 정체현상까지 생겨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04:40경 천왕봉에 도착하니 정상부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저마다 동쪽을 응시하면서 해맞이를 하고 있다. 정상이라 바람이 세다. 추위를 이기려고 비닐우의를 입은 사람, 겨울용 파카를 입은 사람도 보이고 나 같이 미쳐 준비 목한 사람들은 판쵸를 덮어 바람을 맞는 사람도 있다. 일출시각인 05:20를 지나도 해는 뜰 생각을 안한다. 아니 동쪽의 여명도 미동이 없었다. 그러더니 어느 한 순간에 구름이 붉게 물들고 햇살이 비치며 온통 하늘이 붉게 물든다.



05:41 검은 운해를 비집고 붉은 기운이 용틀임 하더니 한 순간 검붉은 빛이 새어 나온다. "와 해뜬다"는 외침에 너도 나도 고함을 지른다

온 몸에 햇살을 가득 받으며 해맞이를 한다. 서울  어느 교회선교회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이 "지리산 해맞이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보기어려운데 너희는 정말 좋은 걸 봤다"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정상표석 부근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기념촬영 한 컷하고 서둘러 하산을 하던 중 어제 만난 서울 한마음산악회원이 인사를 한며 파인애플 조각을 건낸다.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자 기념촬영이나 하자며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기념사진 촬영하였다. 인연이란게 정말 묘하다 싶다. 어제 잠간 30여분을 동행하였었는데 그 동안에 이렇게 정이 들었으니... 서로 산악회 이름을 확인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 뒤 하산길을 재촉했다.



천왕샘부근에 도착하자 먼저가던 일행 중의 꼬마가 볼일을 보고싶다며 화장실을 찾는다. 숲속에 들어가 볼일을 보게한 뒤 먼저 내려와 천왕샘 부근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들은 광주에서 온 태권도 도장에서 극기 훈련차 온것 같은데 보호자도 없고 무전기를 든 인솔자가 고등학생 쯤으로 보였다.  앞서가는 그들을 보니 가관이었다. 키만한 배낭을 맨 그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그 뒤를 따르는 여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정말 놀랐다. 배낭을 열어 남아있는 양갱 두개를 주며 갈라 먹게 했더니 먹지 않고 손에 쥐고 하산을 계속한다. 한참을 내려오다 쉬면서 같이 온 일행들과 같이 나눠 먹는 걸 보았다.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기 보다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두고 먼저 내려가는게 낫다 싶어 먼지 걸음을 재촉해 하산하였다.



앞서가는 할머니 한 분. 연세가 75세로 위암수술한 분이란다. 식사를 잘 못하는데도 빈 속으로 일출산행을 왔다며  천왕봉을 세번째 올라 왔고 그 힘은 부처님 법력이라며 자랑하고 있다. 지리산엔 정말 알지 못하는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법계사 입구, 바윗돌에 어린학생 2명이 앉아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들은 어제 저녁 대피소 옆자리에서 같이 잔 인연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예의바른 어린학생이라 반갑게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산에서의 인연이라는게 이렇게 좋은 것이다. 그들을 뒤로한 채 로터리대피소에서 커피향 진한 캔 커피 하나를 사 먹고 순두류방향으로 길을 잡고 하산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