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상권旅行

내고향 낮질

가야산도사(倻山) 2011. 4. 20. 18:23

나의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은 곳

신라 이전의 대가야로 잘 알려진 고령

고령에서도 가야산 줄기 아래 골 깊은  곳

낮질(또는 낫질)이라 불리는 골

그러나 행정구역 5개 리(중화1,2, 내상리 저전리, 신리)가  있는 큰 골이다

 

70년대 중반에 전기와 버스가 들어온 곳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 짓던 골짜기가

신리저수지로 물 걱정없이 농사 짓고

수박과 딸기 미나리 재배하고 소와 돼지목장은 물론

이젠 공장도 몇 개 있다

요즘엔 돈 많은 외지인의 전원 주택지로 물색되는 곳이 되었다

골짜기 입구의 중화지

  이젠 초등학교 이름도 없어져 버린 모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모교터는 미술촌이란 간판을 건 몇몇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되어 있다

 

 

학교를 추억할 수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이 교사도 졸업 후 신축된 건물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돌조각, 철공예 등 난해한 작품이 많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흙으로 만든 이순신장군상이 서 있던 자리 

 

 

학교 현판과 종이 그나마 보관되어 있다

 

낫으로 만든 솟대가 솟아 있다

학교를 조금 지나면 개인수목원이 있는데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내상리와 신리 갈림길의 이정표

 

이정표 뒤에서 본 고향 전경.왼쪽이 미숭산(760m)이고 오른쪽이 문수봉(676m,공굴산) 가운데 고개 아래는 신리 저수지

저전리 내곡교회

학교 다닐때 자주 소풍가던 섬마솔숲

저전유료낙시터 아래 최근 지어진 전원주택

내고향 신리

 

신리정미소

신리마을회관

신리체험마을 미나리 재배 하우스

신리저수지에서 본 미숭산(760m)과 문수봉(아래)

 

신리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의봉산(557m)

내고향 신리 마을 전경, 가까이는 옥담마을, 가운데는 음지마을(산음, 음지마라 불린다). 뒤로 보이는 능선 은 고령주산-미숭산 등산로이다 

 

 

 

미숭산 등산지도와 산행사진 보기

 

 


신리 소개  

본래 고령군 내곡리 지역인데, 신라 경덕왕 때 신복현이 있었으므로 신리 또른 새마을이란 뜻으로 “새마”라고 하나 확실한 고증은 없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음동을 병합하여 신동이라 하여 고령면에 편입하고 1988년 5월 1일에 동이 리로 바뀌어 신리가 되었다.

일 반 현 황  


○ 신동(新洞) : 신리(新里)라고도 하는데 옛날 대가야국이 망하고 신라 경덕왕 때 신복현이있었는데, 그 신복현의 “신”자를 따서 신동 또는 신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증이 필요하다.

○ 옥담 : 옥담은 신라 진흥왕 때 명장 이사부(異斯夫)가 정병 5천을 거느리고 대가야국의 성을 급습하니, 대가야국의 도설지왕을 비릇한 신하와 많은 왕족들이 이 마을에 피난와서 하룻밤을 묵게 되자, 옥대가 등에 걸려 풀어놓고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신라군이 이곳에까지 쳐들어오자 경황 중에 옥대를 매지 않고 피난길에 올랐다고 하여 훗날 이 마을의 이름을 옥담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옥잠(玉蠶)리라고도 하는데 옛날 대가야국이 신라의 침입으로 망하게 되자 도설지왕을 비릇한 많은 왕족과 궁녀들이 경황중에 피난길에 올라 이곳에 이르러, 망해가는 나라의 비운 앞에 머리를 단장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비장한 결의의 표시로 끼고 있던 비녀를 풀어 떨러뜨리고 가자, 후일 사람들이 이 신동 일대를 옥잠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옥담마는 옥담마을의 준말로, 옥담마라 부르게 되었다.

○ 새땀, 새마 : 옥담마을 왼쪽에 4내지 5가구의 농가가 있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땀, 새마(새마을)라 부르게 되었다.

○ 낫골, 내곡, 사곡, 나곡 : 옛날 어느 귀한 분이 비단옷을 입고 이곳에 들렀다가 지나갔는데 귀한 분이 나셨던 골짜기라 하여 나신골?낫곡이라하고, 귀한 분이 내방 하셨다하여 래곡, 내곡이 되고, 비단옷을 입고 오셨다 하여 나곡이라 하는데, 귀한 분은 도설지왕이 아니면 월광태자(月光太子)라고 한다.

○ 음지마, 산음동(山陰洞) : 이 마을 전후가 모두 산으로 둘러 쌓여 햇빛이 잘들지 않으므로 음지마을 “음지마”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 산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음동이라 하였다. 원래는 내곡면 산음동이라 하였는데, 이 마을은 북향 또는 동북향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