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도동서원[20110412]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 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자료 : 다음 문화유산]
도동서원 가는 길의 다람재 휴식공원
노방송(路傍松)-일노창념임로진/노노영송왕래빈/ 세한여여동심사/경과인중견기인
다람재에서 보이는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고령군 개진면과 마주하고 있다
맞은편산은 며칠 전 산불로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낙동강면엔 4대강사업이 한창이다
소나무 사이 사이엔 진달래가 만발하고
산벚꽃은 화사하게 피어 있다.
서원 앞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의 수령을 말해 주는 나무 위의 기생식물들
서쪽에 있는 신도비
사적비
동쪽에 있는 정각 속의 신도비, 출입문을 잠궈놓아 문틈으로 촬영하였다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수월루
수월루 앞 돌계단
수월루 상량문
수월루 중수상량문
환주문 오르는 계단, 화려하지 아니하고 수수하기 그지없다
환주문, 갓을 쓰고 고개를 숙여야 출입할 수 있도록 낮고 작게 만들어 들어오는 선비의 마음가짐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한다
환주문 옆의 토담, 돌과 기와를 이용한 토담으로 수막새의 장식무늬 등이 빼어나 토담으로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환주문의 문이 더 열리지 않도록 가운데 놓여진 돌로 문지방을 대신하고 있다.
서재(거의재), 서원에 머무르던 유생들의 숙소(현재의 기숙사와 비슷?)로 20~40명이 머물렀다 한다
동재(거인재)-실제 서쪽에 위치해 있으나 도동서원이 북향이라 동서가 바뀐 듯하다
강당(중정당)-강학 공간으로 높은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5간,측면2간의 주심포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좌우 1간이 온돌방이고 가운데3간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이다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 중 1개를 데어가 최근 새로 복원했다는데 사물잠이라 한단다. 옆의 돌기단은 같은 모양이 없으면서 서로 맞물려 있는데 대체로 6단으로 쌓았다
중정당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정요대(庭燎臺), 이 정요대는 일종의 조명시설로 제사 때 이 판석 위에 관솔이나 기름통을 올려 놓고 불을 밝힌다
도동서원의 강당 중정당의 도동서원 편액. 퇴계 이황이 직접 쓴 건 아니고, 이퇴계의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현판이란다
도동서원 사액 "만력35년 2월 선조 40년 즉 1607년"이라
장판각
돌거북?
내삼문
용머리?
사당, 한훤당 김광필 선생과 한강 정구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에 제를 지낸다
중정당 서쪽 마당에는 사각돌기둥에 네모난 판석을 얹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생단(牲壇)이라고 해서 제사 때 사용하는 생(牲, 소․양․염소 같은 고기)을 제관들이 제사에 적합한지 아닌지 검사하는 단이다.
도동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 건너편 고령 개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