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벽송사(2011.2.6)
[벽송사]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지리산 북쪽의 칠선계곡 근처에 있다. 벽송사 소속 암자였다가 사찰로 승격한 서암정사는 바위 더미 위에 지어진 절로 벽송사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옛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에 벽송대사로 불리던 장군 출신의 승려 송지엄이 중창한 뒤 벽송사라고 불렀다.
한국 전쟁 때 지리산이 조선인민유격대의 근거지로 사용되면서 벽송사는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벽송사 건물은 이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본래 벽송사 자리보다 약간 아랫쪽에 새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문화재와 전설]중앙에 법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 한 채씩, 앞쪽에는 일주문과 종루가 있고 뒤쪽에 산신각이 있다.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나무장승 2기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벽송사의 나무장승은 표정이 풍부하여 민중미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빼어난 조각인 것으로 평가된다. 참나무로 만들어진 약 2미터 높이의 남녀 장승으로 각각 금호장군과 호법대장군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벽송사는 신재효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에서 무대가 되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루지기타령에서는 옹녀와 변강쇠가 눈이 맞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함께 살게 된다. 변강쇠가 나무를 하는 대신 장승을 뽑아 불을 때자 장승의 원혼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장승 우두머리는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모두 불러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줄거리이다.
[자료 출처 : 다음백과]
오르막 경사길 앞에 세워진 이정표 당초 목표가 벽송사여서 벽송사를 먼저 올랐다
가파른 언덕길이지만 벽송사 앞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사찰에 있는 경남도 민속자료2호 목장승, 왼쪽에는 금호장군(1969산불로 머리부분 훼손) 오른쪽에는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되어 있으며
많이 가물어 바짝 마른 샘물
범종각
벽송선원과 간월루, 수행도량이라 대나무장대가 걸쳐져 있어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유감이다
샘이 마르기는 마찬가지
원통전 앞 돌계단, 가운데를 양분한 경계 지주석을 세우고 그 돌에 목탁과 염주 연꽃 문양을 새겼다
원통전, 공포부분만 단청을 올린 소박한 모습이다
예전엔 보광전이었는데 아미타삼존불 중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이 도난 당해 관세음보살만 남게 되어 명칭을 원통전으로 변경했다 한다
산신각
벽송사부도탑
보물제474호 벽송사3층석탑, 조선시대 석탑이면서 신라의 석탑양식을 이은 작품으로 본래 대웅전 동편에 있던 것인데 사찰건물을 아래로 이전해 사찰 뒤 쪽에 남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미인송
삼층석탑 뒤로는 수백년생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도인송, 벽송사 주위에는 수 백년 벽송이 많은데, 특별히 푸른 빛을 띈 창연한 모습이 의젓한 수도자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칠선계곡 두류마을 입구 고갯길이 아스라히 보인다
뒤에서 본 벽송사 전경
대나무가 웬지 잎이 말라가고 있다
간월루
안국당
정면에서 본 벽송사 파노라마로 촬영한 모습이다
벽송사 앞의 넓적바위
지리산둘레길 이정표
지리산 공비토벌루트와 인민군 야전병원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