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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_대구 달성군 본리리

가야산도사(倻山) 2011. 1. 8. 01:02

1995년 5월 12일 대구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남평문씨 문중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총규모 11,701㎡(3,546평)에 이른다.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성촌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터를 닦았다고도 한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라 한다. 그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井田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집을 짓고 세거하였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 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있다.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으며,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곳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수봉정사(壽峰精舍)와 광거당(廣居堂 )인수문고( 仁壽文庫)등이 있다.

특히 수봉정사는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터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도 열던 큰 건물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광거당은 1873년 후은공後隱公과 문성공(文成公)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후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로 쓰였다.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위의 서적과 규장각 도서를 포함하여 1만 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의 서고를 후에 크게 지었고, 그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도서열람실도 따로 꾸며 놓았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네비게이션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1,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남평문씨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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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변에서 본 남평문씨세거지

 세거지 입구에 있는 관광안내소. 겨울철 찾는이가 적어 문을 닫았다

 

 왼쪽이 남평문씨세거지 주 출입구인 솟을대문. 오른쪽은 관리사, 관리사로 들어가 왼쪽 쪽문을 이용한다

 

 

  관리사

  관리사에서 출입할 수 있는 쪽문(?)

 

  

 마당에 소나무가 있는 아담한 정원이 있다

 

 수봉정사의  솟을대문

 남서방향에 있는 뒷간

 

  "수백당"_우당 유창환

 

 

 

  "경유당"_위창 오세창

 

 

 

 

 

 

 

  

 

 

 

 

 

 

[인수문고]

남평문씨 집안의 문고인 인수문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서를 고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인수문고 소장 책은 약8500종류 약 2만여권으로 만권당으로 불리기도한다.

도산서원(약4천400권)보다 2배이상 보유하고 어느책도 권수가 하나 빠짐없는 전집으로 보유한 문중서고이다

인수문고

중곡문고-최근 출판된 책을 중심으로 5,000권 이상 보관하고 있다

거경서사-인수문고를 장기간 열람하고 싶은 사람에게 개방하는 독서실

 

 

 

회화나무-키12m, 둘레2.9m 수령300여년으로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세거지 전체의 돌담길이 아름답다

 

 

 

 

 

 

 

[광거당]

광거당은 1934년 지어진 용호재를 허물고 후손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고 문중 공식행사를 하는 재실로 910년 건립되면서 남평문씨를 전국에 알려지게 만들었는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학자와 문인들이 찾아와 학문과 예술을 토론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

 

 

말구유와 마굿간

 

 

 

"수석노태지관"_수석과 묵은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

회화나무_나무높이 12m 나무둘레 2.4m 수령 300년의 보호수이다

 

광거당 마루아래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 수레롸 수레바퀴 축으로 추정되나 알아볼 수 없다

 

"광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