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라권旅行

[남도1박2일]우수영성지와 명량대첩비

가야산도사(倻山) 2010. 1. 14. 00:49

[우수영 성지]

진도대교 가는 길

이정표에 '우수영성지'가 보인다.

보물이나 국보급 목조건물을 생각하고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반포장 길을 따라 가니 면사무소가 정면 언덕위에 있고 파출소가 오른쪽에 있다

면직원인듯한 운전자에게 물으니 이 면소재지(해남군 문내면)가 성지입니다..ㅠㅠ 

체육관으로 변한 옛 공회당,극장인 듯한 건물

재래식 점포

 

 60~70년대가 연상되는 골목. 시대극 촬영세트인 듯한 골목길 

 

[울돌목거북선]

 

 

 

전남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울돌목거북배. 비수기라 휴항중이다

 

[명량대첩비]

우수영지에서 울돌목,진도대교로 가는길의 왼쪽 국도육교왼쪽에 있는 충무사와 명량대첩비. 외진곳에 있어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명량대첩비와 충렬사 입구계단

 충렬사 올라가는 길 옆에 각종공덕비, 불망비가 도열해 있다

명량대첩비와 충렬사 입구

 명량대첩비번역물

 

이충무공비각문 위의 그림

이충무공노량대첩비를 알리는 표석

 

명량대첩비-보물503호, 이 비석은 숙종14년(1680년)에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가 철거해 버렸는데, 1950년 서울 경복궁근정전 뒤에서 발견 우수영 유지들이 찾아와 원위치에 세우지 못하고 현위치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세웠다

 

 

보물 503호. 높이 2.67m. 1688년(숙종 14)에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세워졌다.

조선시대 석비(石碑)의 일반형 형식을 따랐다. 방형(方形) 지대석(地臺石)과 문양이 조각된 장방형(長方形) 비좌(碑座)를 갖추고, 그 위에 신석(身石)을 꽂고 운용문(雲龍紋)을 조각한 장방형 옥개석을 얹었다.

전액(篆額)에는 가로로 '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라 음각되었고, 비문의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을 기각(記刻)했다.

지은 사람은 홍문관대제학 이민서(李敏敍)이고, 쓴 사람은 판돈령부사 이정영(李正英)이며, 제액전서는 홍문관대제학오위도총제부도총관 김만중(金萬重)이 했다.

끝부분에는 "崇禎後乙丑三月日書嘉善大夫行全羅右道水軍節度使朴新胄戊辰三月日立監役出身韓時達"이라 맺어 비문이 씌어진 것이 1686년이지만, 석비가 세워진 것은 1688년 3월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에 의해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문 내용은 1597년(선조 30) 9월에 이순신이 우수영(右水營) 건너편인 진도 벽파정 아래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급류를 이용해 일본선단을 무찌른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이 비는 일제의 박해로 피해를 입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졌던 것을 1945년 해방 이후 우수영 유지들에 의해 원래 세워졌던 장소로 회수되었다.
[출처 : 다음대백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