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동서원
鹿洞書院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585 번지 소재 사성김해김씨 시조 김충선을 모신 사당
모하당 김충선(1571-1642)은
임진왜란시 가등청정의 우선봉장(일본명 사야가)으로 조선에 오게되었으나 명분없는 전쟁이라며 부산항에 내린 즉시 부하3,000명을 이끌고 경상도병마절도사에게 귀순, 권율,한준겸,이순신장군과 서찰을 주고 받으며 전술을 논하고 조총제작기술 가르켜 줌. 이괄의난(1624),병자호란(1636)13년간 압록상 국경방어에 큰공을 세움
모하당 김충선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임진난과 귀화 400주년 기념 신도비 1992.5월에 세움
외삼문인 향양문, 태양을 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녹동사당[김해김씨 성을 하사받은 김충헌]
[녹동서원]
우록동 소재의 이 서원은 모하당 김충선을 추모하기 위하여 도유생이 상소하여 정조 18년(1794)년에 건립한 것이다.
186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885년에 재건되었으며 1971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현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는 정면 5간, 측면 1간, 팔작지붕의 강당과 정면 3간, 측면 1간, 맞배지붕의 녹동사와 정면 3간, 측면 1간의 향양문이 있다.
<모하당 김충선>
모하당은 일본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야만을 미워하고 인륜을 흠모하여 자라던 중 선조25년(1592년) 풍신수길이 이유없이 조선침략군 30만 대병을 출동시키자 가등청정의 우선봉장이 되어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반기를 들고 예의지국인 조선에 귀화하는 용기를 실천하였다
임란에 공을 세우고 조총도약법을 전수하여 전국을 반전시킨 공으로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성(김해김씨 시조)과 이름을 하사받고 자헌에 가자되었으며 광해군 10년 잉방으로 정헌에 올랐으며 70평생을 나라에 충성하였을 뿐 아니라 어명을 기다리기 전에 자진하여 충렬을 다하였으니 삼란공신이라 칭한다.
노후에는 가훈과 향약을 지어 자손을 훈도하고 좋은 마을 만들기에 전념하였다.
인조 20년(임오1642) 72세로 세상을 떠나시니 21년 삼정산 임좌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글 출처: 다음 신지식]
◇ 여행 팁
대구에서 우록리 가다 보면 국도변에 묵집 간판이 집중되어 있는 마을을 지난다. 녹동서원을 본 후 들러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